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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비도 없는 독립운동가

역사책 2024. 10. 7. 13:40

 

 

묘비도 없는 '밀정' 주인공 김시현 묘... 그는 왜 서훈 못 받았나 - 오마이뉴스 (ohmynews.com)

 

묘비도 없는 '밀정' 주인공 김시현 묘... 그는 왜 서훈 못 받았나

"그런데 그건 왜 묻는가?" 지난 2일 오후, 경상북도 예천군 호명면 직산리에서 만난 노인은 경계의 눈빛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어떻게 알고 여기에 찾아 왔냐"라며 "이름난 독립운동가의 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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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952년 6월 25일이 됐다. 임시수도 부산에서 '6·25 2주년 기념 및 북진촉구 시민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오전 11시께 이승만 대통령의 연설이 중간쯤에 이르렀을 무렵 단상 귀빈석에 앉아 있던 양복 차림의 한 노인이 갑자기 연단을 향해 뛰어나가며 이 대통령의 등을 향해 권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은 발사되지 않았다. 노인은 현장에서 체포됐다. 그는 대구 출신 의열단원 유시태였다. 다음날인 6월 26일 당시 이범석 내무장관은 유씨의 배후인물로 의열단 출신 국회의원 김시현을 체포했다. 당시 선생의 나이는 칠순에 달했다.

1952년 제2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이승만 대통령은 대통령직선제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1952년 1월 절대 다수의 반대로 부결되자 이승만은 백골단 등 폭력조직과 관제 데모대를 동원해 연일 시위를 벌였다. 같은해 7월에는 국회의원을 연금시키고 테러를 벌이면서 이미 부결된 대통령직선제를 골자로 한 '발췌개헌안'을 끝내 통과시켰다. 앞서 1948년 10월에 결성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도 1949년 6월 6일 이 대통령에 의해 반민특위 특별경찰대가 강제 해산당하면서 사실상 기능을 상실한 뒤 같은해 10월에 완전히 해체됐다.

당시 선생은 "민족을 버리고 간 놈이 무슨 대통령이냐, 역적"이라면서 "처단해야 한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노구의 의열단원은 결국 이 일을 결행했던 것. 하지만 이 일로 인해 선생은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다시 감옥에 갇힌다. 그리고 8년 뒤인 1960년 4.19혁명을 거친 뒤에야 석방됐다. 선생의 나이 78세에 있었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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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독립운동가 김시현 선생님은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을까?

 

노구의 의열단원은 왜 이승만을 처단하려 했을까?

 

영화 밀정에서 공유가 연기했던 김시현 선생 묘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영화 밀정에서 공유가 연기했던 김시현 선생 묘

9월 2일 페북에 쓴 글 +++ 영화 밀정에서 배우 공유가 연기한 김시현 선생의 묘를 찾았다. 경북 예천 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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