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균의 역사와 현실]진정한 비정상의 정상화 - 경향신문
식민지로부터 해방된 지 46년, 그리고 민주화로부터 4년이 지난 후인 1991년 이항녕 전 홍익대 총장은 자신이 일제강점기 군수를 지냈던 하동에서 자신의 부역에 대해 사죄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부터 50년 전인 1941년 하동군수로 부임해 1년간 재직한 적이 있습니다. 사과한다고 해서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저는 그 당시 공출 실적을 올리기 위해 죽창을 들고 다니면서 군민들을 괴롭혔던 사실을 사과드립니다. 저는 하동군수로 1년, 창녕군수로 3년간 있었는데 그때는 징용·징병·학병을 보내기 위한 일을 했습니다. 그때 그렇게 집을 떠나야 했던 분들 가운데 목숨을 잃은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일본의 앞잡이로서 그런 일을 저질렀던 나쁜 죄인이었습니다.”(노컷뉴스 2015년 7월23일)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1인이었지만, 이후 일본의 전쟁범죄에 적극적으로 공조했던 최린은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 법정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했다. 총독부의 위협에 의한 것이기는 했지만, 끝내 민족을 배반하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그는 죄스럽고 부끄러울 따름이며, 자신을 광화문 네거리에서 죽여달라고 호소했다.
---------------------------------------------------------------------------------------------------------------------------
해방 후 우리가 친일파에 분노한 지점 중 하나는 사과한 사람이 드물다는 것이다.
그래도 사과한 사람들 #최린 과 하동군수 #이항녕
사과는 잘못을 인정하는 일이기에 어려운 일일까?
왜 친일파는 사과하지 않았을까?
'역사 기사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제잔재 마산박물관 (0) | 2024.11.14 |
---|---|
예술로 이야기하는 권기옥 독립운동가 (3) | 2024.11.13 |
음악으로 독립운동한 정율성과 한유한 (0) | 2024.11.10 |
부산항일학생의거/ 노다이 사건 (1) | 2024.11.10 |
의열단장 김원봉 현상금 (0) | 2024.1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