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심장으로 자유언론실천 50년, 50가지 장면 < 언론 < 사회 < 정철운 기자 - 미디어오늘
35. 젊은 기자들이 제작 거부에 들어가자 방우영의 통제 아래 놓인 부·차장들은 다른 신문 기사 베끼기를 서슴지 않았다. 사측은 부‧차장 전원을 아침에 회사차로 출근시켰다. 농성장의 전화선을 모두 끊고 정문에 바리케이드를 쳐서 외부 사람들의 출입을 막았다. 총무부와 관리부 직원들이 기자들을 미행하고 감시했다. 코리아나 호텔 고층 방에서 사측이 망원렌즈로 기자들의 동정을 살피기도 했다. 파면된 33명의 기자들은 3월21일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조선투위)를 결성했다. 조선일보 외신부장 출신 리영희는 훌륭한 기자들은 다 쫓겨났고 도저히 구제하기 힘들겠다고 생각했던 김대중 기자만 남아 조선일보의 상징적 존재가 되었다고 통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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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기자가 올바른 언론을 위해 싸운 것은 아니고 기회주의자는 늘 존재한다.
38. 132명이 해직과 무기 정직을 당했다. 거리로 내몰린 언론인들은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를 결성하고 신문사 밖에서 투쟁을 이어갔다. 사측은 제작에 복귀하면 받아주겠다고 회유했다. 결국 소수가 복귀한 가운데 113명은 동아투위를 중심으로 뭉쳤다. 초대 위원장 권영자 기자는 “당시 내가 가장 신경 써야 할 것은 130여명에 이르는 구성원들의 최소한의 생활비를 보전해 주는 것이었다. 우리 모두는 불법체포와 생계난 등 이중고에 시달려야 했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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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선택할 수 있다.
42. 동아투위가 ‘10·24 자유언론실천선언 4주년 기념식’에서 배포한 ‘동아투위소식지’에는 125건의 사례를 담은 ‘보도되지 않은 민주인권 사건일지(민권일지)’가 담겼다. 경찰은 안종필 위원장 등을 체포해 ‘민권일지’ 작성 경위를 추궁했다. 동아투위는 “이 땅의 자유언론은 감옥으로 잡혀갔다”고 규정하고 강력한 법정투쟁을 결의했다. 해직 언론인들이 대거 구속되었음에도 어떤 신문과 방송도 보도하지 않았다. 안종필 위원장은 감옥에서 얻은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1980년 2월 세상을 떠났다. 안종필 위원장은 수감 시절 지인들에게 말했다. “새 시대가 오면, 국민들이 골고루 출자해서 그들이 주인이 되는 신문사를 세우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걸세. 그렇게 되면 편집권은 독립될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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