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당 박창화, ‘日왕실도서관, 훔쳐간 우리 고서 많다' < 고대사 < 시대별 주제 < 기사본문 - 코리아 히스토리 타임스 (koreahiti.com)
그러나 한국방송 역사스페셜은 일본국립국회도서관에서 남당이 국내성 도서료에 근무한 자료를 확인했다. 또 이날 학술대회에서 조 교수도 같은 일본국회도서관 <궁내성직원록宮內省職員錄>자료에서 확인된다고 밝혔다. 한국방송에서 확인한 남당은 처음에는 박창화朴昌和로 이름을 쓰다가 서기1941년에는 소원창화小原昌和로 쓰고 있다. 이는 일제 막바지에 일선동조론과 황국신민화 정책에 광분하면서 추진한 창씨개명 정책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또 사무촉탁 월급으로 85엔을 받은 것으로 확인된다.
남당은 해방 후 자신이 국내성 도서료에서 근무할 때 본 우리 고대 사서를 잊지 못한 사실도 밝혀졌다. 남당은 정부 관계자에게 일본 왕실도서관에 중요한 책이 있는 곳을 알고 있으니 자신이 직접 찾아오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하지만 번번이 무시되거나 정부가 알아서 할테니 목록을 적어 보내라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한다. 이 같은 사실은 이날 발제자로 나선 조 연구교수도 인정했다. 남당은 당시 자신이 근무했던 청부사범학교 교장, 최기철 박사를 통해 당시 국사편찬위원회 신석호 국장에게 이 같은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청했다고 한다. 일본 국내성에 소장된 조선 고자료를 가지고 오겠으니 보내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거절당했다고 한다.
▲ 임량재 전 중앙대 교수가 서기1999.07.10. 역사스페셜 ‘추적, 화랑세기 필사본의 미스터리’에 출연해 남당이 남긴 말을 증언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그리고 해방 후 화랑은 '바람둥이'이로 왜곡되어 알려져 있었다고 했다. 남당이 바로 잡아 주었다고 했다. 임량재 전 교수는 청주사범학교에서 남당의 제자였다.
이 같은 사실은 당시 남당을 가정교사로 모셨던 김준웅씨에게 서도 확인된다. 김준웅씨는 서기1999.07.10. 역사스페셜 ‘추적, 화랑세기 필사본의 미스터리’에 출연해 더 자세한 증언을 했다. 그의 증언을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그 왕립도서관에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거기에 22년 동안 있으면서 여러 가지 제약을 받으면서 거기에 있었는데, 그리고 그 서적들이라는 것은 한국에서 훔쳐간 것인데 또 그것도 자기네 나름대로 책을 잘랐다 이거에요. 그런 식으로 자기네 책이라고 하고 앉아 있는데, 그걸 (아무나 가서 보여 달라고 하면)알려 주겠느냐는 거죠. 그런데 자기는 거기서 근무하면서 어느 구석에 어떻게 몇층에 뭐가 있다는 것을 다 알고 있는데, (다른 사람이) 여기서 간다고 해서 그걸 주겠냐 말이야.”
한국방송이 서기1999.07.에 현지 일본 궁내청 서릉부에 가서 화랑세기가 있는지 확인했다. 그러나 서릉부측은 이를 거부했다. 대신에 소중화 조선시대 문헌자료 목록만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다른 한국 고서들은 아마도 미공개 목록에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일왕실도서관 이름이 원래는 ‘도서료 圖書寮’라고 했는데 현재는 ‘서릉부書陵部’로 바뀌어 있었다. 또 궁내성이 궁내청으로 바뀌었다. 이 같은 사실을 종합해 보면 남당이 주장한 우리 고서가 현재 일본 ‘궁내청 서릉부’ 지하서고에 보관되어 있을 개연성은 충분하다. 남당이 말하는 고서는 소중화 조선시기 발간한 문헌이 물론 아니다. 김대문의 화랑세기와 같은 상고대사를 기록한 우리 역사서일 것이다
출처 : 코리아 히스토리 타임스(http://www.koreahit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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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앞에는 어떤 내용이 있었을까?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 역사는 다 잘 고증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