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주의 시선] 민족음악의 선구자 채동선 | 연합뉴스
#노동은 교수의 이야기를 읽고 찾아본 #채동선 음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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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막바지 많은 음악가가 전시체제에 순응하는 활동을 했으나 채동선은 이를 거부하고 은둔했다. 서울 근교 수유리에 땅을 장만해 채소와 관상수, 화초를 키웠다. 창씨개명도 않고 흰색 한복에 두루마기, 검은 고무신을 신고 날마다 성북동 집에서 수유리까지 걸어가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우리 민요와 국악을 채보하는 작업에 몰두하면서 이 시기 민족음악 수립의 기초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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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선택할 수 있다 창씨개명도 하지 않고 전시체제에 음악도 만들지 않을 수 있다.
채동선은 일제강점기부터 남다른 열정으로 민요를 채보, 편곡하고 전통음악을 발굴했다. 이 작업은 해방 후에도 계속됐다. 판소리 '춘향가,' 민요 '육자배기'를 악보로 옮겼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서울아리랑,' '진도아리랑,' '도라지타령,' '흥타령,' '뱃노래' 등도 그가 편곡했다.
채동선은 부산 피난시절 친구에게서 양담배를 얻어 장사했는데 고지식한 성격 탓에 종일토록 한 갑도 팔지 못한 날이 많았다고 한다. 국제시장 한구석에서 통조림과 과자 장사도 했다고 하고 막노동을 했다고도 하는데 고생 끝에 결국 영양실조와 복막염으로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 작품 '무궁화의 노래'는 오선지가 없어서 흰 종이에 오선을 그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이런 좋은 음악가는 왜 이렇게 가난했고 그 가난으로 얻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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